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는 삶(3)
김대규 장로
성화의 과정에서 주의할 점이 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교리와 여의치 않은 환경과 여건 때문에 말씀을 행하지 않고 형식적인 신앙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믿음에 대한 무지이거나 오해에서 온 것이다. 사도 바울이 롬1:17과 갈3:11에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한 “믿음”안에는 믿음에 따르는 변화된 삶이 수반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는 야보고가 행함이 없는 믿음이 구원을 이룰까? 아니다. 그 믿음은 죽은 것(약2:14,17)이라고 한 말씀과 같은 맥락인 것이다. 참된 믿음은 그에 걸맞은 합당한 삶이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을 가지고 이 땅에 살지만, 우리의 삶은 주가 주신 말씀대로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답게 부르심에 합당해야 하는 것이다.(엡4:24). 이 뿐만 아니라 성도들과의 관계에서도 겸손과 온유와 인내와 사랑과 용서와 평안의 줄로 하나로 연합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엡4;3-6). 이것이 하나님 나라 안에서 사는 자들의 모습이기에 그렇다.
능력 있는 삶이란 이런 과정에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여기에는 성령의 능력과 주의 보혈의 능력이 함께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화의 삶이란 나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안에서 온전한 새사람으로 주를 위한 삶, 주를 닮은 삶을 사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므로 그 분의 뜻대로 빗어졌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구원의 완성인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누릴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삶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씻겨 주시고 사망과 애통과 곡하거나 아픈 것이 없고 생명수로 목마른자가 없는 영원한 삶인 것이다(계21:3,4). 이를 위해서 우리가 믿음으로 행해야 할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최고의 수준의 일이 있다. 그것은 주의 사랑 안에 거하여 서로 사랑하는 일이다. 아무리 말씀 중심, 예배 중심, 전적인 헌신의 삶이라고 할지라도 이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써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며 주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바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고별설교에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15:12)의 사랑의 행함이다.
이때 “새”라는 헬라어는 “카이넨(Kainh;n)으로 과거에 있었던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변화를 이루어 오히려 새로워진 것을 나타내는 의미가 있다. 새 계명의 성격이다. 주의 사랑 안에 거할 방법은 단 한 가지 주의 새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요15:9,10,12 요일3:23,24). 새계명은 서로 그냥 무턱대고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단서가 붙어 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이다. 주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까지 하신 그 사랑을 말한다. 자기희생적인 사랑, 이익을 추구치 않는 사랑, 원수를 사랑하는 사랑이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맛보고 알고 느낀 자들만이 성령의 열매를 가지고 그대로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은 자들만이 행할 수 있는 세상과 구별된 영역이다. 하나님께 속한 자들만이 성령의 능력으로 행할 수 있는 사랑의 삶인 것이다.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그렇다(요일4:7,8). 그래서 사랑하는 자만이 하나님께 속한 자라고 하신 것이다. 사랑치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했다. 사랑치 못하는 것은 육신의 소욕대로 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께서 분부하신 대로 지금 진정 주의 사랑 안에 거하며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그런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래서 진정 하나님께 속한 자라고 확신하는가. 또한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인가.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신앙고백이 갈2:20과 같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사랑을 행하여 늘 주님과 동행하며 믿음의 실상이 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이 세상을 이기며 즐거이 달려가야만 한다.
지금까지 3회에 걸쳐 나눈 이 내용이 완성된 구원을 얻기까지 지켜나가야 할 중요한 내용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