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벽이 무엇이기에 그런 것일까?
김대규 장로
인간에게서 이 성벽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사랑과 의와 화평과 희락의 하나님의 세계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고 인류를 구원키 위해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실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사리와 선과 악을 판단하여 결정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다. 이 자유의지는 인간이 하나님의 피조물로써 하나님과 떨어지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속에서 주어진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뜻을 잘 판단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이루도록 능동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절대적인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다.
인간이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므로 죄가 인간과 세상에 들어와 타락하였기에 인간에게는 타락의 결과로 이 성벽이 마음속에 생기고 그에 따라 육신을 쫓아 살게 되어 죄가 만연케 되고 오늘날과 같은 혼돈속에서 참 삶의 본질과 목적을 상실하고 세상을 쫓고 있다. 이 성벽은 무엇일까? 바로 세상으로부터 온 생각과 이론과 지식과 이치와 관습들을 말한다. 여기에다가 더 덧붙일 것이 있다면 욕망일 것이다. 이것들을 가지고 자신이 왕이되고 주인이 되어 마음대로 자신의 부귀 영화를 위하여 권모술수를 써가며 좌충우돌을 하며 사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갈수록 어지럽다.
이 성벽은 하나님을 아는 것을 방해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기에 하나님과의 만남도 가로막고 있는 견고한 진이다. 이 성벽은 인간이 영원히 죽도록 육신을 쫓아 살게 하는 무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타락한 육신에 있게 하므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다(롬8:5-8,13). 그래서 성경은 이 성벽을 무너뜨리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 했다(고후10:4). 여기서 강력 곧 하나님의 병기로 믿음과 말씀과 예수님의 성품을 가지고, 성령의 능력을 받아 이 성벽을 무너뜨려 죄와 세상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강한 능력이다.
진정한 성도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병기로 마음속에 있는 성벽을 무너뜨려 더 이상 자신이 왕이나 주인이 아니라 종으로써 하나님을 섬기게 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므로 당연한 일이다. 마치 토기는 토기장이가 원하는 대로 쓰임을 받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성벽이 무너지면 세상의 것이 아닌 성령님으로부터 공급받는 말씀과 지식과 사고와 생각에 따라 분별력과 지혜가 생기게 되고 영의 세계가 열리게 된다. 이리될 때 그리스도의 영이 마음속에 내주하게 되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롬8:9,14,15). 이에 따라 세상의 것과는 구별되어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게 되므로 거룩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말씀을 주셨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말씀은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19:2,벧전1:15,16)이다. 이는 하나님나라의 본질이요,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므로 거룩하지 않은 자는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거룩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부르시는 자들도 거룩한 자 곧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산 자들인 것이다(마5-7장참조). 마치 등과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처럼 준비된 자들이다.
내 자신이 거룩한지를 알아보려면 간단한 방법이 있다. 지금 내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안에 있는지 혹은 아닌지를 보면 알 수가 있다(요일2:16). 다른 말로 내 마음속에 아직도 성벽이 있는가를 보라는 것이다. 그 안에 살고 있다면 세상에 빠져 있는 자이요, 죄에 속한 자인 것이다. 그래서 로마서 8장13절에서 우리에게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고 가르쳐 주고 있다. 믿음으로 나가야할 올바른 방향이란 세상과 구별된 사고와 삶인 것이다(골3:2-5). 곧 거룩한 삶이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야 하므로 자유의지의 발동도 이에 맞추어져 하나님께 순종과 헌신으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삶의 방법을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2장 20절을 통하여 “나는 십자가에 주님과 함께 못을 막아 죽었으므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계신 주님이 사시는 것으로 나는 믿음으로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라고 우리에게 제시해 있다. 하나님께서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해서 죄로 타락하고 하나님과 대적하는 성벽까지도 가슴속에 쌓은 반역자와 같은 죄인인 인간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정점을 이루었다. 하나님은 인간이 저지른 죄가 어떨지라도 회복시켜 인간 창조의 원래 목적대로 영광을 받으시고 교제하며 영원히 함께 하시기 위해 주님의 십자가로 용서와 화해와 회복을 시키신 것이다.
이 시대의 흐름은 마지막의 마지막 때를 향하여 달려가는 형국이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이제는 구원의 차원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발 더 나가 주님의 재림에 준비하는 자가 되어 들림을 받아야 한다. 현세적인 믿음이나 자기영달은 들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직도 우리 안에 있는 성벽을 무너뜨려 참 믿음을 가지고 미래를 내다보며 가차없이 새 하늘과 새 땅에 목을 매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