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딤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
김대규 장로
성막의 기구들을 제작하는데 사용된 나무가 싯딤나무이다(출25장, 27:1,2, 30:1-6). 특히 성소안에 있는 기구들의 재료로 금으로 덮어씌워 상하지 않게 보존되도록 하였다. 싯딤나무는 아프리카와 중동지방에서 사는 생명력이 강한 나무로 아카시아 나무라고 부르며 조각목으로 번역되기도 하였다. 광야의 메마른 환경에서 자생해야 하므로 수분을 유지키 위해 잎이 가늘고 긴 편이며 노란 꽃이 봄과 늦여름에 핀다.
건조한 지역에서 살기위해 땅속깊이 뿌리를 내려 물줄기를 찾는다. 가뭄속에서 생명을 지키는 특이한 나무이다. 우리가 아는 아카시아 나무와는 다르다. 키도 3-8m정도인 마른 나무이다. 하나님은 이 나무를 광야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고난속에서 견고해졌고 벌레가 갉아먹지 못하는 특성이 있어 내구성이 강하므로 구하기 힘든 백행목보다 이를 성막의 기구에 사용케 하신 것이라고 본다.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가 있다. 우리의 신앙이 싯딤나무처럼 고난을 이겨내며, 강건하고, 끈질기고, 변치 않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을 받아야 하겠다는 각성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흔히 우리의 삶을 광야에 비유한다. 싯딤나무가 사는 삭막한 광야만큼 인생이 힘들고 많은 역경과 고난이 따른다는 의미에서 말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결과에서 온 것을 뜻한다.
메마른 광야인 이 세상이 우리의 눈에는 풍요롭게 보일지라도 그것은 보여지는 현상일 뿐이지 영원할 수도 없고, 속은 썩은 내가 나는 타락이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영적으로 보면 이세상은 틀림없는 광야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눈에 좋아 보이는 이세상이 다 인양 속고 사는 것이다. 여기가 ‘좋사오니’ 펄쩍 주저앉아 헤맨다. 이것이 사탄의 계략인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풍요처럼 보이는 허구인 세상이라는 광야의 더위와 추위에 움츠린 우리에게 나래를 펼 수 있게 해 주셨다. 하나님의 피조물이지만 영광을 접하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 설령 우리가 세상에서는 싯딤나무처럼 보잘것없이 보인다 해도 하나님의 상속자로써 하나님과 함께 하는 복된 자, 존귀한 자가 된 것이다. 이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이러한 은혜안에 있는 자는 은혜를 받은 자답게 살고 있어야 한다. 바로 철저한 순종과 함께 고난과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연합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므로 자신에게 임한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것이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산다는 의미이다. 이리 될 때 진정한 하나님 중심의 삶, 거룩한 삶, 성결한 삶, 철저한 순종의 삶, 말씀과 기도의 삶이 되어 지게 된다.
보잘 것이 없는 싯딤나무이지만 철저한 순종으로 하나님이 원하시고 함께 하시고자하는 성막의 언약궤와 향단과 떡상으로 만들어지는 재료가 되었고, 금으로 입혀져 언약궤로, 향단으로, 떡 상이 되어 하나님의 존귀와 영광과 함께 하는 자리에 있게 되는 최고의 위치에 있게 된 것이었다. 아울러 싯딤나무는 놋을 입힌 번제단으로 죄에 대한 용서함을 받아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로 마련된 곳까지 사용되었다. 세상에는 이름 있는 수많은 수목들이 있지만 싯딤나무는 광야에 홀로 외로이 서 있기에 누구하나 눈길 주지 않는 나무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택하시고 사용하실 때에는 백향목도 시샘하는 귀한 자리에 서게 된 것이었다. 이에 반해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이 친히 창조하신 자이다. 존귀한 자인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우리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위해 사는 자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의 것을 분토같이 버리고 주를 따라야 하는 자이다. 우리가 갈길,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세상을 넘나들며 적당히 살기도 하고 심지어 주님을 위한 일이라면서도 속마음에 숨기고 있는 야망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보잘것없는 싯딤나무도 철저한 순종을 하였더니 존귀한 자리에 있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갈길, 해야 하는 일, 순종해야 하는 일에 충실하지 못하다면 결과는 싯딤나무와는 상반된 결과에 서게 될 것이다. 그것은 형벌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해도 불순종이므로 죄가 되기 때문이며, 진정 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싯딤나무와 같이 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인 동시에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철저한 순종만이 있는 것이며, 그래야 살길이 열리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참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리 될 때 싯딤나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쓰임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며, 하나님이 임재하신 현장에서 함께 하는 엄청난 은혜속에서 승전가를 부르게 되는 것이다. 싯딤나무는 때로는 평안속에서, 때로는 타오르는 불길속에서 참기 힘든 연단을 묵묵히 이겨내며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충성되이 감당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자리에 있게 된 것이었다.
우리도 이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신다. “내가 나의 영광을 위하여 내 이름으로 너희를 창조하였으니”(사43:7). 어떻게 우리가 살아야하는지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친히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도 철저히 순종치 않는다던가,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살겠다면 어찌 되겠는가?
우리는 싯딤나무를 생각하고 바라보아야 한다. 참된 하나님의 자녀로 진정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릴 수 있게 말이다. 이것은 들림을 받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고전10:31),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삶(롬5:1-11)을 살고 있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