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주신 만나와 우리
김대규 장로
출애굽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전권적인 역사이었다. 바로 신정 이스라엘의 시작과 유월절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를 상징이기도 한 이 가나안을 향한 여정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 백성으로의 훈련과정이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의 이 세상살이를 상징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홍해에서 구원시켜 주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속에, 성막에 임재하고 계심을 알면서도 이스라엘 백성은 죄성에 찌들은 인간의 육신적인 과거의 습성으로 불순종하기도 하였다.
이런 사건중에 첫 사건이 우리가 잘 아는 만나와 메추라기라는 먹거리사건이다. 광야에서 먹을거리가 풍족치 못해 과거 애굽 시절에 배불리 먹던 고기와 떡을 그리워하며 원망을 하였다(출16:3). 이는 마치 오늘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음에도 모자라 세상의 것을 기웃거리는 우리네 모습과도 별 차이가 없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리지 못한 잘못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 먹거리를 충족시켜 주신 것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하나님의 의도를 나타내신 것(출16:4)으로 우리에게도 깨닫아야 할 메시지가 있는 것이다.
만나라고 하면 우리는 주님이 주신 주기도에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말씀을 연상케 된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일용할 양식이 삶에서 중요한 부분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 당시는 필요한 육의 양식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 우선이었다면 지금 우리에게는 육의 양식보다는 오히려 영혼의 양식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라고 하겠다. 광야에서 아침에는 만나로,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공급해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용할 양식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챙겨 주시고 계심을 알게 하신 것이었다.
하나님은 한꺼번에 많은 만나를 주어 쌓아놓고 먹게 하시지는 않으셨다. 오직 매일 각 사람이 먹을 량(한 오엘)만큼 공급해 주셨다. 욕심을 내봐야 부식해 버리게 되었다. 세상의 욕심을 버리는 훈련으로 매일 쓸 것을 공급하여 각자가 필요한 만큼 채워 주셨다. 이 양식은 세상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으로 마치 옹달샘의 물을 마시고 나면 다시 물이 채워지는 듯이 쉬지 않고 일용할 양식이 공급되어지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주관자이요, 보호자이시며, 공급자이심을 깨닫게 하여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을 원하신 것이다.
당사자였던 모세는 이렇게 만나를 주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으로 살아야 함을 알게 하려고 하신 것이라고 말했다(신8:3). 바로 말씀으로 살게 하기 위함이 만나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 하나님의 의도였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어떠했나? 우리의 모습을 여기서 발견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주기도에서 “오늘 우리에게”의 우리라는 의미는 나 아닌 타인들까지를 지칭하고 있다. 타인을 포함한 점은 구속사적인 성격으로 선교의 의미를 나타낸다고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공중에 나는 새도, 들에 핀 백합화도 건사해 주신다. 하물며 사람이야 말할 필요도 없이 돌보신다. 그래서 주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를 말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을 알고 계시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세상의 정욕과 욕심에 연연하지 말고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것은 결국 기도를 통해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역설적인 의미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나라 곧 저 높은 곳을 향해 나가는 길인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말씀의 삶, 거룩한 삶과 영혼구원의 삶에 필요한 영의 양식을 구하여 충족히 받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하시려는 숨은 계략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만나는 육의 양식을 넘어 영의 양식까지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만나는 옛적만의 양식이 아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매일 공급해 주신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세상에서 얻어지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은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어지는 하늘의 만나인 것이다. 그러므로 남이 더 많고 나는 적다라는 비교의식은 불신앙이다.
하나님이 주신 분량이 많던 적던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최적의 만나의 분량임을 깨닫고 감사하므로 사도 바울과 같이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어떤 경우에도 자족과 풍요를 누려 하나님의 진정한 복을 만끽하는 참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여기에는 말씀으로 성숙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 함이 내포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만나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지금 우리는 삶에 초점을 어디에 주고 있는가? 아직도 세상의 것인가 아니면 하늘의 것인가. 다시금 하늘의 만나의 의미를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한다. 우리에게 성큼 새 하늘과 새 땅이 닥아 오고 있음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