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규 장로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나를 따라오려거든 네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고 말씀하셨다(눅9:23). 이 말씀은 진정한 구원과 성화는 주님 앞에서 “자기부인”이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옛사람이 변치 않고 옛모습 그대로 살아서는 진정한 구원, 진정한 성화에 들어설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나의 생각, 뜻, 사고관, 생활철학, 지식, 고집, 욕망, 명예, 권력, 지위, 소유물, 세상 등 내게 해당된 것들을 다 내려놓고 주를 따르는 것이다.
이것이 “자기부인”이다. 자신을 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세상과 구별되는 것이며, 주의 십자가에 죄와 함께 자신이 못박혀 죽는 것이기도 하다. “자기부인”은 곧 주의 뜻대로만 따르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매일 같이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자기 십자가는 삶 속에서 부딪치는 역경이나 문제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주께서 걸었던 길을 따르며 하나님을 위하여 당해야 하는 고난과 핍박들을 감내하는 것을 말한다.
믿음을 지키기 위한 인내와 선한 싸움인 것이다. 이해하기 쉽게 끝까지 주님을 따른 열 한 제자(가롯 유다 제외)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생업, 가족 등 세상에서 자기의 속한 것들에 연연하지 않고 포기하였다. 그리고 주께서 승천하신 후 복음을 위해 겪었던 수난과 심지어 순교했던 십자가의 길이 바로 이러한 예일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 사는 것이라.”(갈2:20) 의 말씀은 “자기부인”과 함께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의 모습이자 신앙고백과도 같다.
그런데 주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직분과 상관없이 “자기부인”이 없는 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를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지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 왜 그럴까?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Key는 진정으로 내가 주 안에 있느냐 아니면 주 밖에 있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진정으로 성령의 인치심을 받아 내 안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내주하신다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내가 주 안에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말씀이시다.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말씀으로 통치하신다. 그 말씀이 하나님의 복음으로 내 안에 들어와 내 인격체를 새롭게 변화시켜 내 육신이 작은 예수의 모습을 나타내게 하신다. 주 안에서 믿음이 말씀으로 실체화 된 모습인 것이다. 옛 사람이 아니라 새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 안에 있는 자는 “자기부인”을 하게 마련이다. 내가 죽는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려놓는 것이다. 참회개, 참 회복을 통하여 구원과 함께 성결한 자,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자가 되는 것이다. 진정한 성화의 삶을 사는 자인 것이다. 기도와 말씀으로 온전케 됨으로 하나님과 동행, 동거하는 자가 되어 현존하는 하나님 나라에 거하는 것이다.
주안에 내가, 내안에 주와 주의 말씀이 거하는 참 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자인 것이다. 이러한 자, 이러한 삶을 누리는 자는 보이는 이 세상에 묶여 있지 않는다. 오히려 이 세상을 뛰어 넘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이며 주께서 공급하시는 신령한 복인 하나님 나라의 의와 희락과 평강을 이 세상에서 누리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복을 누리려면 참 회개, 참 회복을 이루어 가며 눈에 보이는 세계에 현혹되지 말고 내쳐야 한다. 내 중심의 삶을 버리고 하나님의 관점,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며 하나님, 주 예수님, 성령님과 하나로 연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리 볼 때 지금우리는 진정으로 주 안에 온전히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완전한 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따라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참 회개, 참 회복, 참 자기부인을 통하여 믿음이 장성한 수준에 이르기까지 인내하며 성숙해져야 한다. 그래야만 성화를 거쳐 영화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고로 “자기부인”은 우리가 주 안에 있도록 주께서 친히 명령하신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