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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단상 132-10월호

By October 23, 2024No Comments

– 김대규 장로

 

주를 믿는다면서도 삶의 영역이 세상에 오염되었음에도 무감각하거나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모습들을 간간히 보게 된다. 더 나가 회개도 없이 같은 죄를 반복하는가하면 세상과 구별됨이 보이지 않는 그러면서도 믿음이 있다는 모습은 충격적이다. 왜 이리될까를 곰곰이 생각도 해 보았다. 첫사랑의 상실이나 둔감, 갱신없는 신앙이 제일 큰 원인이라고 보여진다. 주의 은혜에 타성이 생겨서인가?

주위의 사람들의 처세가 모두 거기서 거기인 듯이 보이기에 별 다를게 없어 무감각해져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따라가거나 동질 또는 동화되어지는 것 같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은 성령께서 간섭해 주신다는 점이다. 상처가 나면 아프고 붓고 하며 외부에서 들어온 세균에 저항하듯이 믿는 자가 세상모습에 젖어 들 때 성령께서는 양심을 통해 우리를 채찍질하신다. 깨달음이다. 결국은 올바로 구별되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레지스탕스가 적에게 저항하는 것과도 같다. 보존하고 살기 위함이다.

이렇게 세상의 것들에 대해 때로는 눈에 보이게, 때로는 보이지 않게 저항하며, 싸우며 사는 것이 세상에서의 믿는 자의 삶이다. 이것이 세상에 물들지 않고 올바로 서서 나가려는 영적 싸움 곧 영적 전쟁인 것이다. 최선을 다해야한다. 전장에 서있는 자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죽기 아니면 살기이기 때문이다. 무수한 총알이 난무하는데 순간적으로나 습관적으로 적당히 대처한다면 결과는 처절할 것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최후의 심판에서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고로 우리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나도 모르게 세상에 오염, 동화되는 것이다. 이것은 생명의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허사가 되기 때문이다. 심판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면서 세상의 것과 혼합해서도 아니된다. 진정한 하나님의 것 이 외의 것에 대한 어떤 타협도, 동조도 나를 쓰러트리는 자해행위이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올바로 서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은 병이 들게 마련이다. 물은 갈아엎기가 쉽지만 우리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영적 싸움에서 패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영 분별력으로 세상의 것은 물론이고 위장된 유혹과 속임수, 선하게 보이게 하는 위선, 사익에 가려진 헌신이나 섬김을 구분해야 한다. 하나 쉬운 일은 아니다. 합리성이라는 논리, 체계와 조직의 효율성, 세상적인 이성적 판단, 개인우선주의, 물질주의, 성전환, 동성애 심지어 AI까지 수많은 세상의 것들이 쓰나미로 밀려들어 주님이 주신 조타기를 가누기가 힘들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에 필요한 것은 깨어 있어 기도하며 성령의 도움을 받아 우리의 사고와 삶이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성령이 공급하시는 능력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것을 가하게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진정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라면 세속화에 대해 당연히 알레르기 반응이 나올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에 대응하고 소멸시킬 힘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안에는 성령이 내주하고 계신다. 그분은 하나님의 생명이자 하나님의 능력이므로 성령을 의존하여 그릇된 데에서,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 성령의 생명의 법안에 늘 거하도록 스스로를 추슬러야 한다. 내안에서 작은 예수의 모습이 분출되어 소금처럼 짠맛을 내어 부패되는 것은 방지하고, 빛처럼 어두움을 몰아내어 죄로 엉클어진 이 세상이 주의 빛으로 바꿔질 수 있게 온전한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그대로 행하면 된다. 현존하는 하나님나라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오히려 하나님께 동화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나를 내려놓고 성경으로 돌아가 매일의 행동과 삶이 하나님의 것으로 새롭게 갱신되어(엡4:23)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입은 성령충만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엡4:24). 이리될 때 내 주변은 소리 없이 알게 모르게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내가 보이지 않을수록 성령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은 강해진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으로 매일 새롭게 되도록 세상에 흔들지 않게 스스로를 채찍질할 때 세상을 뛰어넘을 수 있다. 이 때 우리는 세상과 구별된 참 신앙에 서게 되는 것이다. 현존하는 하나님나라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리해야만 연약한 육신의 나와의 싸움에서 이겨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자로 우뚝 설 수 있다. 주안에 있는 자, 세상과 구별된 자가 되는 것이다. 세속화되지 않는 자이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자이다.

그 이름은 새로운 피조물 소금과 빛이다. 바로 이러한 자가 우리이어야 한다. 그리고 소금과 빛이 우리의 이름이어야 한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진 것같이 내가 선 곳에서도 그 뜻이 이뤄지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