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 아이다 목사님을 기리며…
양태철 목사 (국제총회 선교부장)
봄이 오는 길목의 화창한 오후 2시34분, 김 아이다 (김성녀) 선교사님은 사랑하는 부군 김태원 목사님과 사랑하는 동역자들의 마지막 임종예배 (필자 인도)와 찬양가운데, 만 76세의 이 땅에서의 모든 삶과 사역을 내려놓고, 영원한 본향 아버지 집으로 가시게 되었다 (임종 예배 전, LA 공항 계류장에 계셨던 한기홍 담임 목사님의 마지막 기도를 전화로 들으심). 마지막 호흡을 내 뱉으신 후의 그 평안한 모습을 뵈면서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게 되었다.
필자 부부는 28년 전, 독일에서 있었던 유럽 트레스 디아스를 통하여, 김광신 목사님 내외분과 김태원 & 김 아이다 선교사님 내외분을 만나게 되어, 두 선교사님의 권유에 의하여 프랑스 비디오 교회 (1989)를 인도하게 되었고, 본교회에 등록하게 되었다. 그 후, 본교회의 파송선교사로 만 9년간 러시아와 호주에서 사역을 하고, 본교회 선교목사와 선교팀장으로 만 15년 간 사역을 한 후, 2016년 12월부터 국제총회 (대한예수교장로회 보수합동)의 선교부장 (71개 교회 및 기관 소속의 74개국 540명의 선교사와 17곳의 신학교와 1곳의 선교사 훈련원을 섬기고 관리)으로 사역을 하게 됨을 항상 감사하고 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에 체류할 때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은혜선교센타의 두 분 선교사님 (김태원, 김 아이다 선교사님)의 사역을 돕기 위하여, 필자 부부가 왕복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중고차로 독일 고속도로를 운전하여, 한 달에 2-3번 이상씩 봉사하던 기억이 새롭다. 항상 환한 얼굴로 필자 부부를 맞이해 주셨던 아이다 선교사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기만 하다.
고 김 아이다 선교사님은 1941년 2월 24일,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났으며, 1958년 3월에 삼척여고를 졸업하고, 서울간호대학을 입학하여, 1963년 2월에 졸업을 하면서 간호원 국가고시에 합격하였으며, 1964년 5월에는 조산원 국가고시에도 합격하였다. 또한 1964년 9월에 대한석탄공사 장성 의료원 수간원으로 근무하다가 1966년4월5일, 김태원 선교사님과 결혼을 하여, 슬하에 두 형제 (에디, 사무엘)를 두었다 (큰 아들은 목사로 사역 중이며, 둘째 아들은 직업군인을 예편 후, 크리스챤 카운슬링과 컴퓨터 관계 일을 하고 있음).
1970년 파독 간호원으로 선발되어, 독일 시립병원 부인과 수술실에서 근무한지 2년 만에, 남편과 두 아들을 독일로 초청하게 되었다. 그 후, 1977년 9월에 정간호원 (RN) 신분으로 미국으로 이민하여,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1985년 6월에 베데스다 신학대학을 졸업하였으며, 또한 GMU의 전신인 캘리포니아 유니온 신학대학원도 졸업하였다.
본교회의 선교사로는 1986년10월5일에 유럽 선교사로 파송이 되었으며, 1993년에는 미주연합노회 최초로 여자 미안수 목사를 받았으며, 2002년 6월에 정식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다. 1990년부터 5년간, 한국 서울에 은혜선교센타를 세우고, 유럽과 한국의 사역을 겸하였으며, 이때 수많은 유럽과 한국의 선교 헌신자들이 구소련에 선교사로 들어가게 되었다. 필자 부부의 경우도, 김태원 선교사님 내외분의 영향으로, 카나다 밴쿠버에서의 투자이민 영주권을 포기하고, 1993년1월18일에 러시아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하여, 본교회 파송선교사로서 구소련 전체 선교센타의 실무책임자로서 4년 반의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당시 전체 디렉터는 홍성훈 목사님과 후임으로는 유의경 목사님).
고 아이다 김 선교사님 내외분께서는 1997년 6월에 브라질 선교사로 파송되어, 중남미 선교의 문을 열게 되었으며, 1998년 3월에는 아르헨티나로 파송되어, 2000년 2월부터 아르헨티나 신학교 (중남미 센타 신학교)를 시작하였으며, 아이다 선교사님의 건강 이상 (간염)으로 미국으로 돌아와 약 2년 간 치료 후, 다시 2008년 6월에 페루로 파송되어, 페루 신학교의 기틀을 놓게 되었다. 그 후, 2013년 2월에 칠레 선교사로 파송 받아서 칠레 은혜선교센타를 세웠으며, 아이다 목사의 건강악화로 인하여, 2015년 1월에 완전히 선교 사역에서 은퇴하였다. 2015년2월24일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2년간 투병가운데, 지난 3월4일 (토) 오후 2시34분에 주님 품에 안기게 되었다.
고 김 아이다 선교사님을 지난 28년간 가까이에서 지켜본 필자는 아이다 선교사님의 삶과 사역은 디모데후서 4장7절에서 8절의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은 삶과 사역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주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선한 싸움을, 주님의 제자로서, 선교사로서, 그리스도의 군사, 그리스도의 대사, 그리스도의 순례자로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키신 고 김 아이다 목사님께 예비 된 의의 면류관과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는 우리 모든 성도들도, 그 길을 소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천국에서 다시 만날 그 날을 기리며…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데살로니가전서 4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