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으로 산다는 의미
김대규 장로
믿는 자에게 말씀으로 산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쉽지가 않다. 원래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말씀대로 살 능력이 없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의 도우심으로만이 그렇게 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루의 24시간을 온전하게 말씀대로 살아 본 나날들이 얼마나 긴 세월인지를 셈하여 본다면 우리 자신들의 참 믿음생활의 현주소가 정확하게 드러날 것이다. 아무리 결단하고 행하여도 길게 지속되기가 힘들다. 다급히 부딪쳐야 하는 현실적 문제, 아직도 습관적인 습성이 앞서고, 때로는 이성보다는 감성이 먼저이고, 어떻게 보면 뒤죽박죽식의 익숙한 삶의 방식 때문에 온전한 말씀대로의 하루도 힘들 경우가 많은 것이다.
왜 그럴까? 우리 안에는 생명의 법과 죄의 법이 있기에(롬 7:22,23) 늘 갈등 속에서 자신을 다스려야 하기 때문이다. 고로 항상 깨어 있으라고 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하기에 주께서 우리에게 거쳐야 하는 성화단계를 주신 것이라고 본다. 오늘보다는 내일이, 내일보다는 모래가 점점 성숙되어 나가도록 성령께서 인도해 주시는 것이다. 말씀으로 살도록 말이다. 따라서 말씀으로 산다는 것도 오늘은 4시간, 내일은 5시간 식으로 말씀이 곧 삶의 전체로 되어가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세상의 잔해를 벗어버리고 주님의 성품인 성령의 열매들로 자신이 변화되어져야 정상이다. 결국 성령께서는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 자신이 보이지 않게 하여 자신을 다 내려놓고 주의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하고 항복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말씀 안에 거하는 모습일 것이다.
이 모습을 우리는 성경에서 쉽게 찾을 수가 있다. 바로 사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생애 곧 주님의 삶이다. 주님은 자신의 생각이나 뜻에 따라 사신 것이 아니다. 매일 공급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셨다. 그 말씀을 바탕으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신 것이다(히 10:7).
요즈음 현대인의 우선 합리적인가, 내 마음에 부합되는가를 따져 현실적으로 믿으려는 안타까운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진리이기에 무조건 절대 순종하여 십자가에서 목숨도 내 놓으신 것이었다. 바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는(요 15:7)” 방법이다. 참 믿음의 길은 이와 같이 단 하나의 길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10)”고 말씀하신 것이다. 말씀은 생명이요 운동력과 능력인 것이다(히 4:12). 신실한 지혜와 지식이기도 하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분이 주님이시다(요1:14).
그러므로 우리 안에 말씀이 살아 있지 않고 말씀으로 살지 않고 가르쳐 주신 사랑이 없다면 우리 안에는 주님이 진정 계시지 않은 것이라고 하겠다(요 15:6). 이는 주께서 하나님의 말씀 안에 항상 거하심으로써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을 보아서도 알 수가 있다. 또한 주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는 것도 계명 곧 말씀의 실행이 삶으로 연결될 때의 일이다 (요 14;21,23). 고로 말씀으로 산다는 것은 참 믿음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주의 사역을 외치며 매달린다. 그러나 말씀으로 살며 주안에서 순종할 때만이 그 사역은 주의 뜻을 온전하게 이루어 갈 수 있는 것이다. 성령님이 주관하셔서 주님만이 보이고 자신은 보이지 않는 참 사역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허공을 치는 사역이 될 수 있는 공산이 크다.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목적에 맞는 삶은 말씀으로의 회복과 순종이다. 주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성령을 쫓아 행해야 한다(갈5 :16).
렘 8:9을 보면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고 말씀하신 것을 볼 때 구약시대 때에도 삶의 뿌리가 말씀이라는 것을 넉넉히 알 수 있다. 혹자는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이해할 때 말씀을 붙들고 씨름했더니 불가능이 가능으로, 기적적인 변화가 따르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일이고 이런 일이 없다고 해도 상관이 없다.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은 삶이 성경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주님은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말씀으로 살아야만 한다. 영원한 생명과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보라.
이 세상을 구약의 광야시대에 비유한다. 이 때 히브리어로 광야는 “미드바르”이다. 이는 말씀을 의미하는 “다바르”와, 함께한다는 “미드”라는 단어가 합쳐진 것이다. 곧 광야는 말씀으로 훈련하는 곳, 하나님과 함께 말씀이 함께하는 곳을 말한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의 우리는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의 기초는 나를 주님 앞에 몽땅 내려놓고 전적으로 성령님께 맡기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곧 주에 대한 전적신뢰로 부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