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규 장로
예수님은 우리의 정체성(identity)을 산상수훈에서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마 5:13-16)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하나님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도 실현시킬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자기부인의 삶이고, 십자가의 삶이기도 한 것이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도래할 하나님나라와 이미 도래한 하나님 나라(현존)사이에서 우리가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전 인격적으로 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방법(실천적 윤리)을 제시한 것이다. 바로 우리가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는 것을 밝혀주고 있다.
수많은 것들 중에 왜 굳이 상징적 비유로 우리를 소금과 빛이라고 했을까? 부패할 것들을 깨끗케 하고 맛을 내는 소금과 죄로 물든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생명의 빛에는 희생과 섬김이 필수적이고 의무적이다. 이러한 희생과 섬김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아가페적 사랑에서 나온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그 크신 사랑을 따라 나의 빛이 수명을 다하고, 소금으로 녹아 없어져야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우 리의 본분을 다하는 것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소금(헬. 할라스:αλας)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고대시대에서는 금과같이 고 가품으로 부의 상징이었고 1세기 때 로마에서는 군인들의 월급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구약에서도 소금은 언약을 상징하였다. 썩지 않는 언약 즉 영원한 언약이다. 유다 왕 아비야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주신 것”(대하 13:5)을 이스라엘 무리들에게 경각시켰 다. 다윗과 그 자손에게 주신 나라는 세상 나라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 하나님의 나라가 소금 언약으로 보장되어 있는데 그 나라의 근간은 하나님의 뜻에 합한 다윗의 마음이었다.
우리가 소금이 되려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이 빛과 소금이셨던 것처럼 우리가 참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르며 우리가 언약의 소금이 되어 믿음의 맛, 소망의 맛, 사랑의 맛을 내며 그의 나라와 뜻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다. 여기서 “세상”은 땅이 원어적이다. 땅은 마음을 가리킨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렘 17:9)와 같이 세상에 찌든 마음과 죄성에 가득한 사람의 마음에 생명력을 주어 부패와 죄로부터 벗어나 신성한 마음으로 회복하여 착한 행실의 맛을 변치않고 지속케 하는 것이다. 소금이 든든하게 하고 변질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그리하여 다시는 부패치 않고 올바른 삶, 제 맛을 내는 자로 영원히 보존케 하는 것이 “나”라는 소금이다. 이리 될 때 세상은 하나님나라로 정화되게 되는 것이다.
빛(헬. 포스:φως)이다. 빛없이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시간과 공간을 있게 하신 후 먼저 빛을 창조하셨다. 빛이 어둠을 몰아 내는 것은 그 존재자체로 밝혀 주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빛은 하나님, 예수님, 영광, 신성, 임재, 생명, 구원, 진리, 온전함, 선하심등 여러 가지로 설명되어진다. 빛은 하나님나라의 상징으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뜻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낸 다. 주를 믿고 따르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고로 우리는 빛이다. 빛은 노력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빛 자체이므로 우리는 세상과 구별되어 빛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빛이신 예수님을 따라 어둠에 있는 자들을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로 비추어 광명으로 회복시켜 빛 가운데에서 영원히 거하게 하는 것이다. 어두운 세상과 구별되어 빛으로 보존케 하는 것이 “빛”으로 “나”인 것이다.
“소금과 빛”은 상호보완적이다. 양자의 공통점은 소금은 녹아 없어지고 빛도 다하여 모두가 그 자체를 소모한다는 점이다. 또한 세상의 모든 영역에서 새롭게 맛을 내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점이다. 끝까지 주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가 소금과 빛을 감당치 못한다면 아무 쓸데 없는 존재가 되고, 버림받게 되며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어버리는 부끄러운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금과 빛으로 예수님이 행하셨던 것처럼 작은 예수가 되어 착한 행실(칼로스:-하나님의 의도대로 선하고 아름답게 이루는 것)로 하나님께 영광이 올려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