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Column

<1분 단상> – 76 번째

By January 15, 2020December 9th, 2020No Comments

왜 주님처럼 살 수 없을까?


김대규 장로


새해를 맞이하며 내게 주어지는 가장 큰 이슈는 왜 주님처럼 그렇게 살 수 없을까하는 명제이다. 물론 죄사함을 받고 칭의함을 받았으므로 그렇게 살 수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의 자아의 모습은 그런 원론적인 것으로는 충족되지 못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주님을 닮아야 한다고 다짐을 한다. 오늘은 주님을 한시라도 놓치지 않고 살겠다는 작심을 했는데 하루를 다하지 않았는데도 홀로 선 자아를 보게 된다. 내게 빽빽하게 달려 있어야 할 주의 것들은 드문드문이고 버려야 할 세상의 것들이 더 많은 붙어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성화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보면 필연적으로 부딪치는 문제이다.


주님을 놓치지 않겠다며 온전히 살아 본 나날들도 있다. 그런데 매일 지속이 되지 않는다. 주님처럼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답답만 하다. 아무리 사탄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산다고 해도 하나님 나라의 임재 속에 있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교만인 것인가.


왜 주님처럼 살 수 없을까? 살 수 있게 보이는데 무엇 때문일까. 한마디로 나의 경우는 죽었다고 하면서도 완전히 죽지 않아서이다. 죽었다하면서도 급한 경우 나 참아야 할 경우에 control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들이 닥치면 주보다는 세상적으로 처리부터 하려든다. 그리고 이해상관이 생기는 경우 득실을 따지려 하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완전히 죽은 사람은 반응이 다르다. 욕심도 내지 않고 관용하며 기다려 줄줄도 알고 손해도 감수하고 자기주장도 하지 않으며 희생이 따르고 배려하고 접어주며 참고 판단을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성령의 열매( 갈5:22-24)가 죽은 자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이리 볼 때 나는 철저히 매일 죽어야 하는 것이 맞다. 아마도 여러분들도 공감하고 고민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


주님처럼 살지 못하는 데에는 수많은 원인이 있다고 본다. 각 개인의 성격 환경 여건이 다른 만큼 원인도 다양할 것 같다. 성경에는 주님을 따를 수 있는 여러 방법도 제시하여 준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공통분모의 답이 무엇일까를 생각을 해 보았다. 그것 역시 죽는 것이라고 하겠다. 죄에 대해 세상에 대해 죽는 것이다(갈2:20). 세례를 통하여 믿음을 통하여 죽었다고 보였는데 언젠지도 모르게 살아 펄펄 뛴다. 그리고 또 죽는다. 성품이 바꿨다고 했는데 옛것의 잔해가 널려져 설친다. 가관이다. 마음 먹은대로 되지가 않는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롬7:24)”라고 했었을 것이고 “나는 날마다 죽노 라(고전15:31)”고 한 이유일 것이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항상 우리에게는 두 법이 대두되어 싸우기 때문이다. 하나는 마음의 법 곧 하나님 뜻대로 살고자 하는 하나님의 법이 마음속에 있고 또 하나는 육신을 쫓고자하는 사망의 법이 지체속에 있다 (롬 7:22,23). 그런데 우리가 육의 세상에 있어서인지 죄의 법이 판을 치려고 한다.


우리 속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우리의 생각 지식 이론 사고 습관 욕망들이 견고한 진을 치고 있어 주님 앞으로 나가는 것을 가로 막고 있기 때문이다(고후10:5). 이것이 곧 육체의 병기가 되어 우리를 쓰려 트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안에 항상 거하고 동시에 주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해 있어야 한다(요15:7). 믿음과 성령의 능력과 말씀과 주님의 성품으로 무장된 하나님의 병기로 육체의 법을 무너트려야 한다. 그래야 주님을 닮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는 매일 우리의 몸을 쳐 복종케 해야 한다(고전9:27).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사로잡히게 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온전히 받아야 하겠다는 결단과 행함이다. 우리의 지체에 있는 세상의 소욕들을 복종시켜 하나님의 뜻대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야망 욕심 권위 명예 자만 체면 나의 의 때문에 하나님의 것을 상실해서는 아니된다. 많은 이들이 이것 때문에 하나님나라를 놓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죽어야 주님처럼 살 수가 있다. 우리가 가진 세상의 것들을 놓아야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버려야 할 것은 세상의 소욕들이다. 그래야 세상을 이길 수 있고 또한 완전하지도 온전하지도 않다고 할지라도 주님을 닮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수 있는 Key는 무엇일까? 우리의 중심이다. 우리의 중심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가 전혀 다르다, 그래서 빌립보서 2:5에서 “너희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의 마음이니”라고 말씀한 것이 아닌가. 자신을 비어서 종의 형체로 낮아져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다.


이 말씀과 같이 되려면 하나님을 향한 철저한 순종과 사랑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자신을 내려놓고 잠시 있다가마는 세상의 소욕(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생의 자랑. 요일2:16)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함을 가져야 주님처럼 살 수 있는 길로 나설 수 있게 되리라고 본다. 여기에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절대적이다. 올해에는 주님처럼 살 수 있어 하나님나라의 의와 평강과 화평속에서 유형하며 기쁨과 감사와 사랑이 넘쳐나는 삶이 되어 하나님의 화폭에 아름답게 옮겨지기를 갈망한다. 이리 될 때 하나님나라가 우리와 이 땅위에 충만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