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나이(אדוני:주), 나의 주 하나님이 되었다는 의미
김대규 장로
다니엘서 1장 2절을 보면 “주께서”라는 말씀이 나온다. 히브리어로 “아도나이”로 “주, 하나님, 야훼“의 의미로 쓰여진다. 좀 더 의역하면 ” 나의 주, 나의 주 하나님“으로 표현할 수 있다. 나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이신 아도나이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의미한다.
원래 아브라함이 “아도나이 야훼여 나에게 무엇을 주시려나니까. 나는 자식이 없나이다.(창15:2)”의 장면에서 처음 “아도나이”가 사용되었는데 하나님과의 주종관계에서 야훼를 자신의 주로 믿고 따르는 고백이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을 위해 하나님의 법궤를 앞세워 요단을 건널 때 하나님은 “온 땅의 주권자이신 아도나이”(수3:11,13)이심을 선포하였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주관자이며 천지만물의 주인이신 것을 말한 것이었다.
따라서 아도나이는 창조주로, 천지만물의 주관자로 순종을 요구할 수 있는 주종관계에 있음을 보여 준다(창24:9,10,출21:4-6, 삿!9:11). 이는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떨어질 수 없는 사이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함을 발견케 된다. 마치 토기장이와 토기의 관계와 같다. 토기는 주인이 하고픈 대로 사용된다. 바로 우리가 이런 위치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도 이 관계는 변함이 없다. 이점을 우리는 잊어서도, 놓쳐서도 아니 된다.
반면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주인으로 피조물인 종에 대해 항상 지켜줄 책임도 동반된다(시143:2,3,렘46:10,눅12:22,요13:1-3,빌4:19).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탄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간을 구원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는 이런 숨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종은 아니어도 피조물이라는 신분은 지속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창조원리이기때문이다.
이러한 “아도나이”를 “나의 주”로 믿고 있는 우리이다. 이것은 믿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의 삶 전체를 주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나의 주 아도나이( ינודא – 주, 하나님: 야훼)께서 온 우주만물의 주권자이시며 통치자이심을 인정하고 무조건 따르는 삶으로 어떤 역경, 환난, 환경도 주께서 허락하시고 그 속에서 나를 주관하시며 인도하고 계시는 나의 아도나이(주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맡기는 삶인 것이다.
여기에는 주 하나님께 변명도, 이유도 있을 수 없는 순종의 삶이 있을 뿐이다. 사실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실제로 우리는 어떠한가? 이리 살아야 한다. 이것이 성경적 삶이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피조물은 주인을 따를 뿐이다. 이를 벗어나면 버림을 받게 마련이다. 우리는 욥과 요셉의 삶에서, 믿음의 선조들에게서 이를 배워야 한다. 그들은 이렇게 살았던 것이다. 욥은 역경속에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요셉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환난가운데 함께 하시는 주 하나님을 붙잡고 믿음을 지켜 비록 환난을 당하나 형통한 자라고 성경은 말씀했다.
신구약 중간기에 있었던 환난과 로마제국시대의 환난기에서 이름도 없는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주의 뜻대로 살았던 것이다. 주 하나님과 동행한 삶을 산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의 자들과 함께하시어 승리케 인도 하시는 것이다.진정으로 하나님을 나의 주 하나님으로 믿는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하는 실제는 세상에서 내가 하고픈 일들을 포기하고 희생해야 하는 문제가 동반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주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주가 원 하시는 대로 사는 것이기에 나의 의도, 나의바램과는 거리가 먼, 아니 나의 입장과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왕같이 살던 것, 내 마음대로 살던 것, 세상의 것을 다 버리고 구별된 거룩한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하지만 살상은 그렇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의미를 다른 표현으로 하면 나를 내려놓고 희생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의 주 하나님(아도나이)를 믿는다는 것은 주의 뜻대로 살아 주님이 동행해 주시는 삶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나를 다 내려놓는,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내 스스로 내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의 성품으로는 힘든 일이다. 그러나 영원한 천국을 소유키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님의 피조물로 돌아가야 한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에 더 많은 것을 포기하며 나의 주 하나님만을 쫓아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본질적 문제이기 때문에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창조의 원리이기에 그렇다. 이것을 벗어날 자는 없다. 진정 우리가 야훼 하나님이 나의 주 하나님(아도나이)이 된 하나님의 자녀이라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고 당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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