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규 장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고 당부하셨다(마24:40-44). 한마디로 주님의 재림에 대비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우리가 주님이 다시 오시는데 대한 준비를 하지 않고서는 들림을 받을 수 없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깨어 있으라”(그레고류오 γρηγορεω:헬)라는 의미는 온전하게 깨어 있는 상태로 방심치 않고, 조심스럽게 신중하며, 세심히 주의를 기우리는 것을 뜻한다. 이 의미를 보더라도 우리는 그저 예수를 구주로 믿고 “여기가 좋사오니”하며 안주해서는 아니됨을 깨달아야 한다. 한번 구원은 영원하다는 단순한 원리만을 생각하고 안일한 믿음으로 세속적인 신앙생활을 해서도 아니됨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신앙의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은 내 자신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새롭게 단장되어지는 신앙 안에 있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다. 고로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이다. 진정한 피조물인 토기이라면 토기장이인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쓰여지기 때문에 안주할 수가 없다.
항상 어떻게 사용하실까 긴장하고 깨어 있어 순종할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행하기가 쉽지 않더라고 주의 말씀이면 행해야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인데 합리성을 내세워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는 신앙인들이 너무나 많다. 이는 깨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방식이 아닌 자신이 세운 방식에 따르는 것이다. 이런 자는 현존하는 하나님 나라에 있는 자가 아니다. 들림과는 상관이 없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에는 주님의 신부가 될 열 처녀의 비유가 나온다. 모두 신랑을 기다리지만 등불과 기름을 가진 다섯 처녀만이 결혼잔치에 참석케 된다는 이야기이다.
준비된 자, 깨어있는 자만이 구원을 받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는 하나님의 뜻대로 산 자,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을 한 자가 들림을 받게 됨을 말한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 주의 뜻을 헤아리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깨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출애굽기 27장 20절의 말씀을 인용하고 싶다. “감람으로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고 등불을 켜되”라는 말씀이다.
성스러운 성소 안의 어두움을 깨고 그리스도의 빛으로 밝히는 등불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감람으로 찧어낸 순결한 기름은 성령을 상징하지만 말씀과 기도로 깨어진 겸손하고 순수한 신앙을 의미하기도 하다. 이 순수한 신앙은 부단히 세상적인 불순물들을 부딪혀가며 도려내고, 잘라내며, 걸려내어 성결함과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함을 일궈낸 삶으로 빛되신 그리스도를 비추어주기 위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진정한 믿음을 가진 자를 가리킨다. 사랑과 희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이다. 하나님과 동행, 동거하는 자인 것이다.
주님께서 “깨어 있으라”고 하신 의미는 바로 이러한 자가 되어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으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주를 믿고 따르는 자들이다. 그런데 재림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우리는 계시록 시대 속에 살고 있다. 환란의 때이다. 펜데믹은 물론 앞으로 닥칠 엄청날지도 모를 환란들을 대처하며 유연하게 이겨나갈 길은 오직 깨어있어 환경을 뛰어 넘고 지배하는 믿음 위에 있는 것이다.
성령충만한 삶인 것이다. 고로 어떠한 환란들이 닥쳐온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주님을 만나기 위한 과정일 뿐이므로 요동치 않아야 한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흔들리지 않는 자, 어떠한 경우에도 말씀을 붙잡고 배교치 않는 믿음의 승리자가 끝까지 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깨어 있는 자의 모습이다.
성결과 거룩과 진리 안에서 잠시라도 이탈한다면 하나님의 그 가장 소중한 때를 놓칠 수가 있다. 그러기에 언제나 주 안에 내가, 내 안에 주와 주의 말씀이 거하여 하나가 되어져 있어야 한다. 이리 될 때 우리는 “깨어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갖게 된다. 이는 어떠한 환란들이 온다고 해도 최후의 승리를 할 수 있는 견고한 성이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눈을 가지고 깨어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