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규 장로
사도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하였다. 당시 빌립보 교회는 대내외적으로 고난과 분열을 겪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우리네 처지도 마찬가지이다. 짧은 하루를 지내는데도 많은 사적이 생겨 기쁨으로만 가득 찰 수가 없다. 그런데도 “항상 기뻐하라”고 한다.
원래 기쁨이 충만했던 시절은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만물을 다스리고 관리하던 때였다.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쳐나는 속에서 하나님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던 그 기쁨. 그것이 원천적인 기쁨인 것이다. 그런데 이 기쁨을 우리는 상실하고 말았다.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수고와 땀과 고통이 찾아와 원천적인 기쁨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게 되었다. 그저 눈에 보이는 만족, 성취감에 즐거워하는 세상적 관념의 충동적인 기쁨이 모두인양 착각 속에 살게 된 것이었다. 이것은 세상에서 익혀진 것이지 하나님의 것이 아니다. 나의 노력이나 행동의 댓가로 얻어지는 상대적인 기쁨인 것이다.
그러나 “항상 기뻐하라”의 판토테 카이레테 (Πάντοτε χαίρετε)는 원하는 일이 성취되었을 때 얻는 기쁨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역경과 고통 속에서도 기뻐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러한 기쁨은 인간의 감성만 가지고는 나타낼 수가 없는 부분이다. 이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음으로 우리의 죗값을 지불하시고 구원하시므로 totally 회복시켜 주셨기에 이에 따라 상실했던 원래의 기쁨도 누릴 수 있게 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한 것이다. 이때 “주 안에서(엔 퀴리오: Εν Κνριοζ)”라고 한 것은 기쁨의 원천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말해준다. 이는 주님이 “내 계명을 지켜 내 사랑 안에 거하라, 이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는 것(요15:10,11)”이라고 한 말씀에 기인한 것이다. 여기서 “내 기쁨”이란 말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기뻐하신 기쁨을 말한다.
따라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는 주의 계명 안에 있을 때에 주님이 누렸던 기쁨을 받아서 우리도 그렇게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다(갈5:22).
이 서신을 보냈을 당시 사도바울은 고난과 함께 로마옥에 갇혀 있었는데도 믿음에 굳게서 이러한 기쁨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걱정과 근심에 쌓여 있어야 마땅한데 이보다는 주님만을 의지하였기에 성령님께서는 당면한 것들을 극복하고 뛰어 넘을 수 있는 믿음을 주셔서 어느 하나 변한 것이 없는데도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된 것 이었다. 오히려 이 기쁨을 가지고 걱정하는 빌립보 성도들을 위로하였던 것이다.
나의 이야기이다. 얼마 전 갑자기 폐렴이 생겼다. 엘러지성 감기가 원인이었다. 응급실에 들어갔으나 불안이나 걱정은 없었다. 늘 하듯이 첫 기도가 생사화복의 주권은 아버지께 있으니 원하시는대로 하시라고 모든 것을 주께 맡겼다. 나의 마음은 평강으로 충만했다. 나도 모를 기쁨이 솟아나 폐렴이 상관없는 듯이 여겨져 초월할 수 있었다.
그 후 마치 과녁을 맞춘 화살처럼 “주가 채찍을 맞음으로 나음을 받았도다 (사53:5)”의 말씀이 내 가슴 속으로 파고 들었다. 그리곤 4일만에 퇴원을 했다.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은 필요에 따라 구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안에서 믿음으로 늘 우리의 삶을 전적으로 주께 맡길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령님은 이러한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우리의 환경이나 처한 처지에 상관없이 그것들을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주의 기쁨으로 충만케 하신다. 이것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삶”을 유지할 수 있는 하나의 원리이다.
믿음의 선진들을 보더라도 온갖 수난과 역경에도 믿음을 지키며 복음을 생명 같이 여긴 것은 주님이 주시는 능력과 평강과 희락이 큰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믿음의 본질대로 나를 내려놓고 주만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 때 주님이 공급하시고자 하는 모든 것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근심있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고후6:10)”라고 고백하였다.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고백,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주변만 맴도는 믿음이 아니라 믿음의 본질로 들어가 항상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고 즐기는 주의 참 된 제자가 되어야 한다. 세상을 뛰어넘고 세상을 이기는 믿음 위에 서서 주님이 주시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